‘문화적인 사각지대 찾기’ 오인환 작가 인터뷰

 오인환, 나의 사각지대‐인터뷰, 비디오, 34분, 2014~2015

오인환, 나의 사각지대‐인터뷰, 비디오, 34분, 2014~2015

 

금요일 밤, 종로와 이태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게이의 성역’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 숨겨 온 성정체성을 허물없이 드러내고 마음껏 웃고 떠드는 우리는 일상의 시공간과는 다른 별세계에 속한 것만 같다. 심지어 게이 클럽 앞에서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성애자들마저 이곳의 의미, 우리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테다. 우리는 여기 있지만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시공간은 ‘사회적인 사각지대’에 있다.

우리는 이 사각지대에 대해 각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미술을 통해 이 사각지대를 세상에 공개한 작가가 있다. 게이로서 성정체성을 밝히고 미술가로 활동해 온 오인환. 그는 1996년 미국에 체류할 당시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에 자신을 ‘GKM(Gay Korean Male)’으로 커밍아웃하고 ‘진짜(real)’ 작가를 찾는 광고를 낸 프로젝트 ‹퍼스널 애드›를 진행한 이후, 게이로서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 이슈를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왔다. 2001년 귀국 후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은 종로와 이태원의 게이바와 클럽 이름을 바닥에 향가루로 쓰고 전시 기간 내내 태우는 작업으로, 익명으로 존재하는 한국의 게이 커뮤니티를 가시화해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오인환은 정체성 이슈 같은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미술계 제도권의 모순적이거나 불합리한 측면도 비판해 왔다. 그가 견지해 온 제도 비판적 태도는 2015년 다시 한 번 크게 주목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15›전 최종후보 4인 중 그가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LA주립미술관 관장 마이클 고반은 시상식에서 “오인환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룬 강렬한 작품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실현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라고 평했다. 그가 선보인 ‹사각지대 찾기›전은 획일적이고 편향적이며 제도적인 주류 사회문화의 아성을 깨뜨릴 가능성을 사각지대 속에서 찾았다. 비주류 커뮤니티가 주류 커뮤니티와 차별화된 대안적인 문화 활동을 모색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을 제고하는 공간, 바로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전역 군인이 군복무 당시 찾아낸 자신만의 은밀한 공간에 관해 설명하는 인터뷰를 상영하고, CCTV 화면에 포착되지 않는 영역을 핑크색 테이프로 표시하고, 시각장애인이 미술관 도슨트 역할을 수행하며 관객을 안내하도록 하거나, 미술 제도권에 수용되지 못해 미술가이기를 포기한 젊은 작가들의 사연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대신 말하는 등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사회 곳곳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를 모색하는 작가 오인환. 혐오와 차별, 몰이해로 가득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문화적인 사각지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인터뷰어: 탁영준 / 사진 제공: 오인환


탁영준 ♨ 2014년 윌링앤딜링과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개인전 ‹사각지대 찾기›, 그리고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올해의 작가상›전에서 선보인 동명의 전시 모두 ‘문화적인 사각지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각지대’는 어느 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점을 취할 때 불가피하게 대상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영역 혹은 각도를 뜻한다. 그렇다면 작업에서 제시한 ‘문화적인 사각지대’는 무엇을 뜻하는가? 게이 커뮤니티 역시 여기에 속하는가?

오인환 ♨ 어떤 사회에나 주류 혹은 지배적인 문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가부장제가 주류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카메라의 사각지대와 같이 그 사회의 주류, 보편으로부터 벗어난 사회문화적인 차원의 사각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게이 커뮤니티를 포함해서 소위 타자들의 영역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사회적인 사각지대’가 ‘문화적인 사각지대’와 자동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문화적인 사각지대는 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의 한계를 인식한 개인들이 이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 활동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영역을 일컫는다. 소수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주류문화에 비해 부족하거나 결핍된 곳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내가 말하는 문화적인 사각지대와는 거리가 있다. 소수자들이 자신의 커뮤니티를 지배적인 문화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대안적인 문화 활동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활용할 때, 게이 커뮤니티와 같은 소수자의 공간은 문화적인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탁 ♨ 작업에서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가시화’하고 있다. 자의적, 타의적으로 감추어진 이 영역을 드러내 우리의 시야 안으로 들이는 일이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오 ♨ 한국사회는 여전히 이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가부장제에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소수자나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타자들의 영역인 사각지대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지배적이거나 보편적인 문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전부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나의 기준이나 규범이 지나치게 절대화될 때 그 문화는 매우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가시화하는 내 작업은 한국사회가 문화적인 배타성을 정당화하지 않도록 다양성을 지지하는 것이며 문화적인 다양성의 기반으로서 타자의 영역이 갖고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주류 문화의 배타성을 소수자인 게이들이 내재화하는 경우도 빈번한데, 즉 게이 커뮤니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가부장제와 같은 지배적인 문화에 편입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각지대를 가시화하는 내 작업은 게이 커뮤니티와 같은 타자 영역의 문화적인 가능성과 의미를 타자들 스스로 재발견하고 이것을 커뮤니티의 다른 게이 혹은 소수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다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은 상식이지만 내가 미처 볼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각지대는 주체적이거나 보편적인 시각에서는 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퀴어적인 시각에서만 목격될 수 있는 사각지대를 시각화하는 것은 퀴어미술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다만 내 작업이 사각지대를 포함해서 사회의 모든 차원을 시각화하거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볼 수 없는 영역, 시각화할 수 없는 영역이 항상 존재하며 이러한 비시각적인 영역의 존재가 의미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섭렵하려는 것은 주체적인 욕망이다.

탁 ♨ 작가 본인도 문화적인 사각지대 안에 있다고 느끼는지.

오 ♨ 개념적으로 문화적인 사각지대는 늘 변화하는 영역이며 어느 누구도 사각지대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를 수 없다고 본다. 카메라의 방향이 바뀌면 그 사각지대가 바뀌듯이 한 사회의 주류도 늘 변화하기 마련이며 이에 따라 그 사회의 사각지대도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속할 수 있는 문화적인 사각지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게이 커뮤니티가 사회적인 사각지대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대안적인 문화가 창출되는 문화적인 사각지대인 것은 아니다. 게이 커뮤니티가 문화적인 사각지대로 역할하기 위해서는 게이들의 문화활동이 주류사회에 주목을 받거나 지배문화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커뮤니티 자체의 문화적 가능성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미술가로서 나는 적극적으로 문화적인 사각지대를 형성하는 사람이고자 한다.

탁 ♨ 앞서 언급한 두 전시에서 모두 영상작품 ‹나의 사각지대‐인터뷰› (2014~2015)를 선보였다. 영상에서는 전역자들이 지난 군복무 시절 군부대에서 찾은 자신만의 은밀한 사적인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 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군부대에서 군복무자들끼리 자위행위 등 성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다지 껄끄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미술공간에 ‘전시’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을 듯하다. 이 인터뷰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부터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오 ♨ 그렇다. 2014년에 처음 참여자를 모집했는데 어려운 과정이었다. 사실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고 본다. 한국 남성들은 군대에서의 경험들을 자주 이야기하지만, 부정적으로 말하든 긍정적으로 말하든 자신의 남성성을 침해하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내 작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가 없다면 참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공개 모집을 하는 대신 소개의 방식으로 참여자를 찾았다. 2014년에는 5명만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리고 촬영한 인터뷰를 같은 해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렸던 개인전에서 상영했다. 이 작업의 목적 중 하나는 군복무 기간에 사적인 공간을 찾는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 군대라는 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공통의 경험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통의 경험이라는 내용을 전달하기에 5명은 너무 적은 숫자라고 판단했고 2015년에 5명을 추가로 인터뷰했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올해의 작가상›전에서는 총 10명의 인터뷰 영상을 상영했다.

탁 ♨ 인터뷰 영상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오 ♨ 인터뷰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참여한 사람들과의 촬영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이 작업의 경우 편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영상작품에서 편집은 작가의 입장에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한 사람의 발언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중단하지 않고 매끄럽게 완결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촬영을 반복해서 진행해야만 했는데 모든 참여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협조해줬다.

탁 ♨ 작업에 인터뷰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알고 있다. 사각지대를 드러내는 데 작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보다 참가자이자 협업자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일종의 ‘아웃팅’과 ‘커밍아웃’의 차이인가?

오 ♨ 인터뷰 방식을 참여나 협업의 한 방식으로 활용하게 된 것은 2012년 일본 교토에서의 레지던시 경험이 계기가 됐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내가 일본인 참여자들과 작업할 수 있는 방식을 찾다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참여자가 스스로 발언하고 작가는 이를 수용하는 인터뷰의 장점을 참여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터뷰를 참여의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편집과 같은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발언하는 방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와 달리 내 인터뷰에서 참여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사연을 스스로 말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 점에서 ‘커밍아웃’과 연결될 수 있겠다.

탁 ♨ 2014년 전시의 경우, 전역자들이 군복무 시절 자신의 사적인 공간의 약도를 운동장에 그리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작품 ‹나의 사각지대‐약도›(2014)도 선보였다. 구술하는 것과 직접 공간을 시각화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오 ♨ 인터뷰는 기억에 의존해서 구술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술의 방식은 정보를 전달하는 데 유리하지만 ‘찾기’라는 경험을 체험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각지대 찾기’의 경험을 보다 체험적으로 구현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참여자들이 병영생활 중에 찾았던 ‘사각지대 공간’을 실제 크기로 그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운동장이라는 실재의 공간에서 걷고 활동하면서 과거의 공간을 체험적으로 재현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영상을 보면 운동장에 그려진 약도는 잘 보이질 않지만 참여자들이 운동장을 신중하게 활보하면서 그리는 행위는 눈에 잘 띈다. 이 퍼포먼스는 함께 상영되고 있는 인터뷰와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발견하기 위한 지침, 2014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발견하기 위한 지침, 2014

탁 ♨ 텍스트 설치 및 영상작품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발견하기 위한 지침›(2014~2015)은 전역자들이 병영생활에서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을 찾기 위한 여러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경험에 대한 진술이라기보다 작품 제목의 ‘지침’에서도 드러나듯이 관객에게 이를 권유하고 가이드하는 것 같다. 갖은 수를 써서 지배 체제의 감시에서 벗어나려는, 들키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흥미롭다. 이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침이라고 보는지.

오 ♨ 언급한 바와 같이 ‹나만의 사적인 공간을 발견하기 위한 지침›은 개인적인 경험들의 집합을 통해 지배 체계의 감시망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인들의 처절한 노력을 드러냄으로써 감시체계 하에서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전달하고자 했다. 각 지침의 개별적인 내용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지침이라는 것은 개인적이지 않은, 집단적인 규범이나 교훈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내 작업에서는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고 싶었다. 즉 개인들의 경험과 정보를 또 다른 개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지침의 형식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정보의 공유는 사회적인 지침과 달리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수용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개인에 달려있다. 이러한 점은 기존 사회에 범람하는 지침이나 교훈들 역시 개인들이 전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 것이다.

탁 ♨ 작가 본인의 군생활은 어땠는가? 사각지대를 찾았나?

오 ♨ 물론이다. 군복무 기간 동안 나만의 사각지대를 찾았었다. 군복무 시절은 내게 어려운 시기였지만 군대에서 나만의 사각지대를 찾았던 경험은 개인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경험이다.

탁 ♨ ‹사각지대 찾기›전에서는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객들을 CCTV가 촬영하고 있다. 서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위치한 두 장소(2014년 전시의 경우 이태원의 윌링앤딜링과 창성동의 갤러리팩토리, 2015년 전시의 경우 미술관 내 다른 두 공간)에 CCTV를 설치하고 이 CCTV가 포착하지 못하는 영역을 형광노랑 페인트나 분홍 테이프, 스티로폼 등으로 표시해 두었다. 이 사각지대는 관객이 그 현장에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작업의 작동 원리는 무엇을 뜻하는가? 실제로 현장에서 이 사각지대의 범위를 보면 굉장히 넓어서 조금 놀랍기도 하다.

오 ♨ 이 작업을 하기 전 나는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가 매우 작은 범위에 제한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사각지대를 직접 찾아본 결과 예상과는 달리 사각지대가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내 전시를 방문한 관객은 전시장에 시각화된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가 상당히 넓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나는 관객들이 놀라는 것이 시각화된 사각지대가 단지 예상보다 넓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추측했던 사각지대의 이미지와 전시장에서 마주친 사각지대의 모습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바로 이러한 점 또한 내가 ‹사각지대 찾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험적으로 갖고 있던 지식과 정보는 실제의 사례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선험적인 지식이나 정보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이나 경험을 시도하는 열려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한국사회에서 일반인들이 게이나 게이 커뮤니티를 실제로 경험하지도 않고 선험적인 지식이나 정보만을 근거로 편향적으로 판단하는 문제가 있음을 게이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이들 스스로도 다른 게이나 게이 커뮤니티에 대해 편견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작업을 하면서 상당히 넓은 사각지대가 주변에 산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점을 계속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열려있다면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진입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탁 ♨ 이외에도 군대라는 소재를 작업에 몇 차례 사용했다. 2009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TRAnS›에서 선보인 ‹진짜 사나이›(2009)는 군가를 거꾸로 재생해 일렉트로닉 풍의 음악으로 변조시켜 희화화했다. 또 2014년 ‹사각지대 찾기›전에서는 군복 같은 유니폼에 소위 ‘각을 잡고’ 이 주름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착용하는 과정을 촬영한 사진 작품 ‹유니폼›(2014)도 전시했다. 집단, 국가, 체제 등이 특히 강화된 ‘군대’에 주목한 이유가 있는가?

오 ♨ 작가로서 나는 한국사회가 게이나 다른 소수자들에 대해 왜 그토록 배타적이거나 다양성을 수용하는 데 인색한지 숙고해 왔다. 한국사회는 이성애, 가부장제, 민족주의 등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적인 문화를 근본적인 문화정체성으로 정착시키면서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추정되는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내 작업에서 이러한 집단과 개인의 배타적인 관계를 다루기 위한 적절한 사례가 필요했고 그래서 찾았던 대표적인 사례가 ‘군가’나 ‘유니폼(군복)’이다. 군대는 한국의 집단적인 문화의 특수성을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비록 군가나 유니폼 같은 군대와 연관된 소재들을 사용하지만 사실 내 작업이 군대 자체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 ‹진짜 사나이›와 관련해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군대문화라기보다는 병영문화와는 분명히 거리가 있는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그 군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현상이었다. 최근 군대를 소재로 한 한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도 연결된다. 즉, 군대문화가 우리의 안방에서까지 거부감이 없이 수용되고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진짜 사나이›는 병영문화의 산물인 군가를 병영문화와 상반되는 음악으로 변화시킴으로써 탈병영문화의 사례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업은 군가 ‘진짜 사나이’를 음악적으로 역전시키는 과정을 거쳐 어느 클럽에서 한번쯤 들어본 듯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전환한 것이다. ‹유니폼›의 경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그 개별성 때문에 조금씩 다르게 보이지만 주름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사한 포즈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집단과 개인의 관계는 유니폼을 입는 과정과 유사한 것일 수 있다. 즉,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자발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이 집단의 기준을 수용하고 집단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회화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탁 ♨ ‘사각지대 찾기’라는 콘셉트는 2014년 전시에서부터 가시화됐지만 ‹거리에서 글쓰기›(2000~현재), ‹콘텐츠 공›(2001~현재) 등 그간의 작업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작업에서 늘 염두에 두었던 개념인지.

오 ♨ 2014년 개인전은 2009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이후 5년 만에 신작을 발표하는 개인전으로서 작가로서 나의 입장과 역할을 재정리하는 기회였다. 미술가로서 나의 정체성을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타자로서의 미술가’다. ‘주체로서의 미술가’와 분명히 다른 타자로서의 미술가의 입장과 역할을 적절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사각지대 찾기›라는 내용으로 연결시켜 정리했다. 타자의 미술이 주체의 미술과 가장 다른 지점은 보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의 정체성과 작품의 내용, 소재, 방법론 등을 매우 긴밀하고 구체적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모더니즘 시기까지 전개된 주체의 미술은 예술가에게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을 대표해서 표현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주체 미술의 한계를 대표하는 사례는 이성애자 예술가들이 동성애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을 대상화시켜 표현하는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타자의 위치는 주체의 관점에서 볼 수 없는 사회문화적인 영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그러한 의지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이겠지만…. 이러한 타자의 위치를 바탕으로 지배적인 문화에서 배제된 다양한 문화 활동에 개입하고 그 의미들을 발견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타자로서의 미술가의 가능성이다. 한국문화는 문화적 동질성이나 단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수용하는 것에 인색하고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부정한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적인 문맥에서 타자 미술가로서의 나의 역할은 지배적인 문화에 의해 배제된 다양한 문화적인 활동을 발견하고 의미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문화적인 사각지대 찾기’라고 생각한다.

탁 ♨ 몇몇 젊은 작가를 제외하고 국내 미술계에서 거의 유일한 ‘오픈리(openly) 게이’ 작가다. 앞서 언급한 ‹콘텐츠 공›(2001)을 비롯해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2002), 2004년부터 게이 친구들과 연말파티를 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6년부터 제작해 온 포스터 작업 등 게이 정체성을 주제 삼은 작업도 많다. 그런데 국내 미술계에서는 ‘게이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나치게 개인 단위로 축소하고 정형화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오 ♨ 한국에서 처음 발표했던 작업은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 (2001)이었다. 이 작업은 향가루로 서울에 산재한 게이바와 클럽의 이름을 쓰고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태우는 것이다. 이 작업 이후 계속해서 나의 성정체성과 타자로서의 문화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단지 나의 성정체성을 선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현실을 숙고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내 작업의 사회문화적인 차원을 이해하고 공론화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다수의 경우 내 작업을 동성애라는 개인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에서는 퀴어미술이 사회문화적인 이슈를 다루는 정치적인 미술로 분류되지만 한국에서 정치적인 미술은 제도 정치와 연결된 주제를 다루는 것만으로 이해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내 작업의 퀴어적인 면모가 적극적으로 이해된 것도 아닌 듯하다. 퀴어미술을 퀴어이미지를 표현하거나 성정체성을 내용으로 다루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현대미술로서 퀴어미술은 타자의 입장에서 사회문화제도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미술이다. 아무튼 내 작업을 지나치게 개인적인 미술로 바라보는 것은 내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퀴어이슈를 마치 소수자들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제한적인 시각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탁 ♨ 연말파티는 아직도 개최하고 있는지. 어떤 파티인지 궁금하다.

오 ♨ 연말파티는 지난 13년 동안 계속하고 있다. 2001년부터 서울에 살면서 게이 친구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파티를 열었다. 나름 성황리에 몇 년 동안 지속되면서 연말파티는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있는 행사가 됐고, 그 결과 2007년부터는 파티를 기념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반파티›라는 제목을 붙였다. 파티 참석자들의 사인을 겹쳐서 만든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포스터는 일종의 파티의 기록이며 한국 사회에서 살고있는 게이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탁 ♨ 미술계 외에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는가? 게이 수강생을 대상으로 6년째 현대미술 강의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 ♨ 2010년부터 게이들을 대상으로 현대미술강의 ‘펠릭스를 아십니까’를 시작했다. ‘현대미술’은 ‘미술’과는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 그리고 현대미술은 퀴어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내 주변 사람들조차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전공자인 지인들을 대상으로 현대미술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강의를 시작했다. 첫 강의에 대한 반응이 꽤 괜찮았고 현대미술강의가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적인 활동으로 발전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취미 모임이 커뮤니티 내에서 활성화돼 있지만 전문성을 갖춘 문화적인 활동은 드물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강의를 지속하는 것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강의는 단지 현대미술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며 퀴어문화의 여러 이슈들을 동시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매년 연초에 1회씩 진행하고 있는데 총 7회의 강의에 참여한다는 것이 좀 부담이 되는지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진 않고 있지만 꾸준히 수강생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미술 전문가로서 나는 한국에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로 대표되는 YBA(Young British Artists)와 같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거나 형식적인 미술만이 소개되고 오히려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퀴어미술가들을 포함한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활동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것이 늘 아쉬웠다. 현대미술이 한국에서도 확산되기 위해서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관객들이 확보돼야 한다. 퀴어들은 한국사회의 문화적인 모순을 경험하고 있는 만큼 현대미술의 문화적인 진보성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관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그동안 강의를 하면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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