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Love 1화] 멜버른의 연인

© 정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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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환의 15년 지기 친구 준은 8년 전 한국을 떠나 멜버른으로 날아갔다. 8년 후, 규환은 드디어 남반구에 있는 준 커플을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5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막 돌아온 그가 그곳에서 발견한 사랑의 조건과 순간을 복기한다.

글·사진: 정규환


1화. 멜버른의 연인

준은 2004년 메신저 버디버디를 통해 알게 됐다. 우리는 핑클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까워졌다. 서로가 게이라는 걸 인지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러던 준은 2010년 돌연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갑내기 남자친구 필을 만났고, 파트너십을 맺어 삶을 꾸리고 있다.

2017년 12월, 호주의 동성 결혼법이 최종 승인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만약 준이 결혼한다면 꼭 가야지’였다. 한국에 사는 내가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근사했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푸른 잔디밭 위에서 펼쳐지는 빛나는 야외 결혼식을 혼자 상상했다. 동료에게 “호주에 사는 제 베스트 프렌드의 게이 웨딩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20대의 마지막을 준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들도 마침 3주간의 뉴질랜드 휴가를 계획 중이었고, 그 앞뒤의 시간을 합쳐 약 5주간의 여정을 준비했다. 멜버른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월세 250만 원의 펜트하우스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할 생각에 들떴다. 비록 그 대가로 그들이 비운 방에 에어비앤비 게스트를 받아야 했지만 어쨌든. 별처럼 일렁이는 낯선 도시의 삶 한가운데에 들어가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낭만에 취한 것도 잠시, 우린 다른 세계 속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준의 생일날 한바탕 싸우고 말았다.

난 네가 정말 짜증 나

술 취한 준이 말했다.

왜 자꾸 한국 노래 듣자고 해?
그럼 안돼? 너도 이효리 좋아했잖아
여긴 호주야.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네가 부끄러워
그래, 너 혼자 행복하게 잘 살아라

화가 난 내가 방으로 들어갔다.
몇 분이 흘렀을까 내 방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필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준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
Hope you don’t feel June was too mean.

낯선 곳에서 외국어로 친구의 애인에게 받는 위로라니.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처음 받아보는 느낌의 상냥한 위로라고 느꼈다.

떨어져 있는 동안 그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아졌다. 싸웠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은 어떤지, 술 먹고 어떤 농담을 하는지. 무엇보다 어떻게 낯선 곳에서 사랑을 찾는 용기를 가졌는지. 아마 나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따금 궁금했다. 한국에 많은 걸 두고 온 걸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 행복한지. 이제는 내가 그 행복의 증거가 되고 싶다.

내가 후회하는 건 이곳에 더 빨리 오지 않았다는 거야
예전에 준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정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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