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Love 2화] 두 도시 이야기

© 정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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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게이 커플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2014년 각자의 연애를 시작한 준과 나는 올해 연애 5년 차로 접어들었다. 여느 커플처럼 그에 따른 고민도 비슷했다. 단지 다른 것은 사는 곳이었다. 멜버른과 서울. 그것은 아주 사소한 차이일 수도, 어쩌면 두 시간의 시차처럼, 여름과 겨울처럼, 남반구와 북반구처럼 접점이 없는 시공간일 수도 있었다.

너 몸무게가 몇 킬로야?
나 62kg.

세상에, 우리가 몸무게가 같아지는 날이 오다니. 중3 겨울방학 준의 몸무게는 80kg에 근접했다. 거의 내 두 배였다. 그래서 둘이 같이 다니는 모양이 꼭 '티몬과 품바' 같았다. 기억에 남는 건 내 고등학교 교복을 같이 사러 간 일, 여의도 KBS 담장을 넘다 준의 바지가 찢어져 그가 내 떡볶이 코트를 빌려 입은 것. 고등학교 예비 소집일이었던 2월 22일 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을 지하철에서 접한 것. 같은 반 친구와는 함께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이었다. 핑클을 따라다니던 방학이 끝나고 우리는 부산과 서울에서 각각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그 후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8년을 떨어져 살면서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다가, 우연히 괜찮은 남자를 찾았을 것이다. 그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뻔한 연애를 했겠지. 이 사람이다 싶은 확신이 들었을 때는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어떤 직장에서 일할지 결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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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집은 너무나 쾌적하고 심플했다. “많이 가지면 불안하니까, 가능하면 적게 가지는 게 좋아”라고 필이 말했다. 이 집엔 꼭 필요한 것들만 있었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가구와 가전제품을 하나하나 장만하고 직접 옮겼을 둘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 친구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면 나까지 행복하다는 것. 여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필은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유쾌했다. 좋아하는 디바를 열정적으로 소개할 때, 모카 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법을 알려줄 때. 그리고 준의 생일날 하이힐을 신고 런웨이를 걷듯이 짠! 하고 나타났을 때.

와 이거 죽인다. 어디서 산 거야? 나는 흥분했다.
이거 프리마켓에서 10달러 주고 샀어.
대박 나 신어봐도 돼?
당연하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와 점점 가까워진다고 느꼈다. “처음 게이를 만났을 때 기억해?”라고 필에게 물었을 때, 뉴질랜드의 목장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채팅을 통해 게이를 만난 14살 때 이야기부터, 처음 갔던 호주 클럽에서 드랙퀸을 본 장면의 감상까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옷장 구석에 있었을 그 검은색 하이힐이 귀여웠다. 필은 내가 뒤뚱뒤뚱 힐을 신고 춤을 출 때 소파에 앉아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 그가 내게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준은 뉴질랜드에 있는 필의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 노란 캐리어 가득 예쁘게 포장된 크리스마스 선물이 담겨있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남자친구를 소개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담은 선물을 교환하는 모습. 얼마나 행복할까? 사실 많이 부러웠다. “같이 사는 그 친구는 잘 지내니?” 종종 내게 묻는 엄마가 떠올랐다. 항상 먹을 것을 보내주시는 내 애인의 엄마까지도. 어쨌든 그들은 그곳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지. 3주 뒤에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설렜다.

멜버른의 길을 걷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은 트램을 타지 말고 걸어가 볼까’라고 생각했다. 신호등 앞에서 ‘이쪽 저쪽?’ 잠시 고민하다가, 시장이 보이는 큰길을 선택했다. ‘길을 잃어도 괜찮으니 이 길로 걸어가야지’라고 생각한 찰나였다.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인연은 이어진다고, 사소한 선택들이 결국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을 몸소 마주하는 순간. ‘모두 다 사랑을 찾아갈 거야’라는 노랫말을 되뇌었다.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사랑 혹은 직업을 찾아 떠난다고 믿었다. 때때로 그 여정은 시공간을 초월하기도 한다. 수많은 우연이 이어져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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