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Love 3화] 사랑의 재발견

© 정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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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1월이었다. 남반구의 태양은 뜨거워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졌다.


멜버른의 퀴어 카니발이 열리는 날, 빈티지 숍에서 40달러 주고 산 민소매를 입었다. ‘할리 데이비슨’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였다. 광장을 경쾌하게 걸으며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상의를 탈의하거나, 옆이 시원하게 파진 옷을 입은 근육질의 게이들이 넘실댔다. 한 부스에서 나눠준 무지개 팔찌를 차고 인증샷을 찍었다. 무대에선 화려한 드랙쇼와 반려동물 런웨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준의 친구들과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각자가 준비한 맥주, 와인, 샴페인을 오픈했다. 호모포비아의 방해 없는 낯선 해방감을 즐겼다.

카니발이 끝나고 ‘부산’이라는 이름의 돼지국밥집에서 소맥을 마시는데, ‘행복하지 마요. 행복하려면 사랑한 날 잊어야 하잖아’라는 노랫말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15년 전에 준의 MP3에서 들어본 노래였다. 취기가 올랐는지 마치 그때로 리와인드 된 듯했다. 같은 자리엔 준의 일본, 프랑스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생각할수록 이상한 자리였다. 한국스러움이 과잉된, 여긴 멜버른이었다. 그리고 15년 지기 친구 준과 나. 잠깐 생각에 잠겨 표정이 사라진 나를 의식한 준은 “얘 원래 이래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 속마음은 이랬다.

야, 그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 첫사랑이 결혼하는 거. 물론 우리는 서로의 첫사랑이 아니고 그 이전의 사랑이거나 혹은 다른 종류의 사랑일 수도 있지. 그래, 베스트 프렌드라고 치자.

살면서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분명 있잖아. 과거에 머물기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옛날에 우리가 들었던 노래에 센치해지는 내가 좀 세련되지 못한 걸 알면서도, 눈치 없이 이효리 노래 듣자고 떼썼어.


너는 물론 네 친구들을 배려하려고 그랬겠지만 냉담한 네가 참 야속하더라. 내가 원래 이기적이잖아. 아무튼 오늘 참 행복하다. 같이 행복하자 우리,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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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최근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나라다. 2017년 국민투표에서 61.6%의 찬성으로 가결됐는데 멜버른은 84%라는 가장 높은 찬성률을 기록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사랑을 선택했다. “YES!” 거리마다, 상점마다 그때의 환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재발견이라고 생각했다. 시립 도서관에 서 보았던 동성결혼 운동을 기록한 사진전의 타이틀처럼. ‘Let them eat Wedding Cake.(그들에게 결혼 케이크를 먹게 하자.)’


‘결혼 생각해본 적 없어?’라고 언젠가 준에게 물었을 때, 현재의 파트너십으로도 좋으니 결혼의 메리트를 못 느낀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우리 커플처럼 한 집에 각각 세대주로 사는 것보단 나은 편이 확실해 보였다. 어쨌든 시공간을 돌아왔지만 우리는 두 도시에서 살면서 5년 동안 연애하고, 깨끗한 집에서 잘 살고 있으니까.


준, 오픈 릴레이션십 생각해본 적 있어?

응, 그런데 난 필이 너무 좋아.

나도 완전 동감. 낙타가 너무 좋아.

그래도 가끔은 다른 남자랑 자고 싶어.

어쩜 이렇게 하는 생각이 똑같냐.

지금처럼 서로의 삶을 비추는 찬란한 거울이 되자고. 이렇게 5주 동안 시시콜콜한 얘기로 웃고, 떠들고, 싸우고 나니 지난 15년의 시간이 책장 넘기듯 순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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