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body to Love

 출처: www.queenonline.com/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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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어머…” 한 가수와 그의 매니저가 입을 맞추자 객석에 동요가 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남성 배우의 포개진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탄식은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이의 것이었으리라. 잠깐만, 그걸 몰랐다고? ‘퀴어가 살기에 한국은 좋은 나라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영화를 방해했다. 게이가 오만가지 끼를 부려도 못 알아보는 곳이니까.

전설적인 록그룹 퀸에 대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번 주 수요일 개봉했다. 퀸이 어떻게 결성되었고, 그 곡들을 왜 만들었는지, 그들의 한계와 천재성이 무엇이었는지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밝힐 수 없을 뿐더러, 명곡의 감동과 독보적인 끼는 문자로 담아지지 않는 법이니 한번 보시라. 다만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가 1980년대의 동성애자였다는 사실, 그러니까 게이 암(gay cancer)이라 불렸던 HIV/AIDS가 만연했던 시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려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마지막을 지킨 파트너 짐 허튼, 그리고 도로시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마지막을 지킨 파트너 짐 허튼, 그리고 도로시

2004년 항바이러스 치료제 트루바다(Truvada)가 등장한 뒤 서구권 게이 커뮤니티의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HIV는 고혈압이나 당뇨, B형 간염과 같이 꾸준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트루바다는 올해 초부터 감염내과 접수를 통해 국내에서도 처방이 가능하다. 몇일 전에는 노출 전 예방법(PrEP)으로 고위험군에게 트루바다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도 했다. 비록 오랜 기다림이 있었지만 한국의 풍경도 크게 바뀔 것이라 믿는다.

1991년 11월 23일, 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 투병을 대중에게 밝힌다. 그리고 이튿날 사망한다. 이듬해 봄에는 그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려 2,000만 파운드의 수익금이 에이즈 재단에 전달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불처럼 살다가 떠난 그가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어렴풋이 그려본다. 문득 로스앤젤레스 게이합창단이 부르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다시 찾아 듣는다.

 

Gay Men's Chorus of Los Angeles - Bohemian Rhapsody

Queen - Live at LIVE 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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