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킹 만세

 ©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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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9일,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 헤일›이 클럽 명월관에서 열렸다. 11명의 드랙킹과 관객들이 만들어낸 녹진녹진하고 뜨거웠던 현장을 사진과 글로 다시 돌아본다.

글: 이도진


‘드랙’은 페르소나를 설정하여 립싱크나 춤, 연기 등을 선보이는 퍼포먼스를 말한다. 아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 드랙은 단지 자신의 반대 성별의 복장이나 행동거지를 모사하는 것을 넘어 모든 젠더가 누릴 수 있는 행위예술이 되었다.

‘드랙’이란 단어는 18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속어이다. 연극 중 치마나 망토 같은 긴 옷감이 바닥을 쓰는 장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드랙은 1980년대 할렘의 볼 문화(Ball Culture)가 낳은 것이라해도 무방하다. 상금과 트로피를 두고 당시 흑인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직군이나 계급의 행동 양식을 재현하며 예술성, 패션, 춤, 태도 등을 경합했다.

‹루폴의 드랙 레이스(Rupaul’s Drag Race)›는 미국의 유명한 드랙퀸이자 엔터테이너인 루폴이 진행하는 리얼리티 경쟁 프로그램이다. 시즌 8에 한국인 교포 김치(Kimchi)가 최후 3인이 되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 루폴과 넷플릭스로 인해 ‘드랙퀸’의 존재는 전세계인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그러니까 드랙퀸은 이성애자 남성 주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적”이었던 남성 동성애자들이 그것을 감추지 않고 한계까지 밀어붙여 낙차를 활용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드랙퀸의 대척점 그러니까 “남성성”을 가지고 노는 퍼포머는 없는 것일까?

당연히 있다! ‘드랙킹’이 바로 그들이다.

 © 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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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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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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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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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킹 아장맨은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 ‹올 헤일(All Hail)›을 꾸리는 이유에 대해 한 매체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만, 여성혐오 시선이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한 많은 여성에게 내가 첫 공연을 하면서 느꼈던 해방감을 전해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10월 9일, 아장맨의 말대로 해방의 순간은 명월관을 방문한 여성들에게도 찾아온 것 같았다. 대다수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관객들은 크게 웃으며 쉴 새 없이 환호했다. 관객들은 백인 남성으로 분한 존 존슨(John Johnson)을 조롱하듯 추켜세우거나 로슈(Roche)의 아찔한 춤사위를 탐닉하기도 했다. 사파이어 레인(Sapphire Rain)이 분홍색 치마와 코르셋, 브래지어를 던져버렸을 때 많은 이들의 눈가가 촉촉해 보였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드랙킹은 이 행사의 기획자이기도 한 아장맨이다. 예상범위를 한참 벗어난 아장맨의 외향은 마치 악마의 힘을 획득한 사제의 그것이다. 의자에 앉은 아장맨은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옮기며 독백에 가까운 잔혹한 노래(De Staat, Witch Doctor, 2015)를 부른다. “나는 시체를 먹는 냉혈한이지, 네 기분은 내가 정한다.(I’m a corpse eating vulture, who tells you how to feel.)” 아장맨은 남성의 광기를 창의적으로 재현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몸소 보여준다. 남성의 광기에 부여되었던 천재성이란 무게추를 반대편으로 옮기는 퍼포먼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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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퀴어 문화의 전성기를 맞은 듯하다. 여성이자 퀴어가 주인공인 콘테스트가 열렸다는 것이 가장 큰 증거일테다. 제2회 드랙킹 콘테스트가 언제 열릴지 모르지만, 왕들의 노래와 춤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드랙킹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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